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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미술의 거장 조르주 루오
나무랑나물이랑 2007-11-20 983
작가소개 - 조르주 루오 

조르주 루오는(1871-1958)는 20세기 초의 여러 미술 사조(야수파, 표현주의, 입체파 등)의 어떤 것에도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던 화가입니다. 국립미술학교에 입학하며 귀스타브 모로에게 사사받았는데 스승인 모로는 루오에게 많은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으며, 이에 루오는 독자적인 자신의 길을 가게 됩니다. 모로의 사후 루오는 모로 미술관 관장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사회의 어두운 단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서커스단의 광대나 판사, 부랑자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의 숨겨진 면모를 예리하게 파헤쳤을 뿐 아니라, 말년에 이르러서는 심오한 종교적 성찰의 경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루오가 그림의 영감을 얻은 곳은 현실세계가 아닌 숭고한 영적세계에서였습니다. 그의 그림이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루오를 현대의 렘브란트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연대기

어린 시절 (1871-1902)

혼란한 파리 코뮌 시절 태어난 루오는 일찍이 외할아버지에게서 도미에, 마네와 같은 화가에 대해 배웠고, 점차 회화에 대한 열정을 키워합니다. 스테인글라스 공방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며 밤에는 장식예술학교에서 수학하던 그는, 20세가 되던 해인 1890년 국립미술학교에서 그의 미래에 결정적 영향을 준 스승 귀스타브 모로를 만났습니다. 모로는 루오를 잘 이해해주었고 언제나 따뜻한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국립미술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루오가 아카데미파 화가들의 반대로 로마상 수상이 무산되자, 스승 모로는 제자 루오에게 학교를 떠나 반 아카데미파 예술가로 그림을 그려보라고 권유했습니다. 루오는 점차 자신만의 개성을 발견하면서 콩쿠르에서 요구하던 주제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집니다.

 

방황기 (1902-1914)

1898년 정신적 지주였던 스승 귀스타브 모로가 세상을 떠나자 루오는 정신적으로 큰 위기를 맞게 됩니다.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루오는 자연 속에서 휴식하며 안정을 취합니다. 파리에 돌아온 후 레옹 블루아의 책에 푹 빠졌는데 특히 블루아의 정신적 독립성과 직설적 스타일에 매료되어, 그 자신도 새로운 예술의 길을 걷기로 결심합니다.

그리하여 20세기 초 루오는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하는데, 데생과 색채의 격렬함, 역동적인 선, 날카로우면서도 강렬한 붓 터치가 특징입니다. 또 루오는 창녀와 판사를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형상으로 그려,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등장인물의 형상을 왜곡시켜서 강렬하게 표현한 루오작품의 난폭함에 충격을 받습니다.

이 때부터 루오는 재료를 중시해. 1910년경에는 풍부한 채색이 가능한 유화물감을 사용하여, 유화의 비중이 점점 커집니다. 루오는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테크닉을 찾아내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재료를 실험합니다.
 

고독한 예술가 (1914-1930)

1917년, 파리의 유명한 미술상인, 볼라르가 루오에게 그의 작품들 전체(770)를 사겠다고 제안을 합니다. 루오는 자신의 작업 리듬에 맞게 작업을 마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걸고 승낙합니다. 볼라르는 (뮈비 영감의 재림>, <유성 서커스단>, <수난>, (미제레레>, <악의 꽃> 등, 수많은 저서의 삽화 제작을 주문합니다.

이제 제작된 판화는 루오의 작품에서는 물론 그의 회화 작업 전개에 있어서도 결정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1917년에서 1926년까지 10년동안 루오는 판화작업에 열중하여, 회화는 많이 그리지 못합니다. 이 때 제작된 100여점은 서커스 단원들, 종교적 주제, 풍경으로, 이 시기는 역동적 선과 통일성과 단순성이 특징입니다. 표현적이면서 장식적인 검은색 외각선들은 형태의 구조를 이루어 주며 비중있는 밀도와 움직임을 표출하며 운동감과 깊이를 줍니다. 판화기법으로 끊임없이 작업하고 단계를 밟아가던 그는 작품을 완성의 경지까지 천천히 이끌어 갈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평온한 성숙기 (1930-1948)

2차 세계대전 동안, 이틀리에에서 선과 형태와 색채에 대한 실험에 몰두하여 많은 중요한 작품을 완성시켰습니다. 1930년대 루오의 작품은 평온하고도 활기찬 색조로 가득 찬 기품 있는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꽃, 풍경, 누드 등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주제를 즐겨 그렸습니다. 

종교적인 주제는 그리스도의 얼굴, 수난도, 성서의 풍경화가 점점 많아집니다. 1945년에서 47년경에는 더 밝고 빛나는 색조로 발전합니다. 재료는 두꺼워지고, 붓질은 화면위에 불규칙하게 쌓여지면서 표현 기법에 따라 색반죽이 형태를 잡아갑니다. 1940년에서 48년 사이에 물감이 훨씬 더 두껍고 풍부해지면서 작품이 실제와 같은 기복을 지니게 됩니다.

루오는 판화를 통해 데생과 형태를 단순화했는데, 1940년경에는 형태들이 기호나 상징적인 기하학적 구조가 되어버립니다. 루오는 구상의 한계를 뛰어넘지는 않지만 자주 추상의 세계로 접근하곤 했습니다.


마지막 교향곡 (1948-1958) 

화가 루오의 인생에서 마지막 십년은 폭발하는 듯한 색채와 재료에 대한 심취로 특징지어집니다. 이 최후의 시기는 그의 작품이 가장 빛을 바라고 완성의 경지에 이른 시기입니다.

그림에 덜 희석된 물감이 몇 센티의 두께로 곳곳에 쌓여 있습니다. 폭 넓은 검은 외곽선이 기복 효과를 강화시켜줍니

 
다.  오랜 동안 고집스럽게 색을 반죽하고, 주물러서 그 특성이 변화될 정도입니다.

<사라>의 얼굴은 이 시기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색채의 뉘앙스와 빛의 효과를 늘려가며 물감을 중첩시키는 방식은 그림에 조각적인 느낌을 더해줍니다. 회화의 재료에 대한 고집스런 탐구 작업은 루오의 특징입니다.

그는 연금술사처럼 비밀에 싸인 채 끊임없이 자신의 작품들을 변형시키고 완숙의 경지에 이르게 하면서 실험과 연구를 계속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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